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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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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각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21-3
구분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63호(1982년 8월 4일)
문의
문화관광과(문화재) 930-6792

주변정보

상세내용

이 가옥은 조선전기 문신이었던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가 지은 것으로 명종 6년(1551)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한 건물이다. 송희규가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로 있을 당시 세도가였던 윤원형(尹元衡)과 영의정 이기(李芑)의 행패를 탄핵하다가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고산(高山, 현재의 완주)에서 5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 백세각을 지었다. 이 곳의 마을 이름이 원래는 고산(孤山)이었는데 귀양살이를 한 곳의 지명을 따라 고산(高山)으로 고쳐 불렀다 한다.
규모는 정면 7칸·측면 7칸이고 평면은 '口'자형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점과 대패를 쓰지 않고 손도끼(자귀)로만 다듬어 만든 건축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을 위시한 그 문인들이 성주 장날이 서는 날에 배포할 태극기를 이 건물에서 제작·보관했다고 한다. 또한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1919년)의 모의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는 통고국내문(通告國內文)을 제작·배포한 곳으로서 독립운동과 관련이 깊은 건물이다.
자료담당자
문화관광과     054-930-8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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