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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효자 정려비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 83
구분
도지정 민속자료 제 116호(1999년 3월 11일)
문의
문화관광과(문화재) 930-6792

주변정보

상세내용

이 정려비는 조선전기에 효성이 지극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던 인물인 동천(東川) 박구(朴矩)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이다.
박구(?~1425)는 본관이 함양으로 개성부윤을 지낸 원택(元擇)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세종 연간에 강원도병마절제사·경상도수군도안무처치사·좌군총제 등을 역임한 인물로서 지극한 효성으로 그 이름이 높았다. 그의 효행에 대해서는 어머니인 정부인(貞夫人) 이씨(李氏)가 병환이 들자 천지신명께 빌어 얼음 위로 뛰어오르는 잉어를 구했으며, 눈 속에서 복숭아를 얻어 병을 구환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한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다. 후일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중종 30년(1535)에 정려(旌閭)를 내리고 자헌대부 예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정려비는 화강암 재질로 높이 110㎝·폭 49㎝·두께 14㎝의 크기이며, 정면에 『효자가정총제박구지려(孝子嘉靖總制朴矩之閭)』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좌측에 『숭정기원후삼임진4월일(崇禎紀元後三壬辰4月日)』이라 새겨져 있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碑閣)은 정면 1칸·측면 1칸의 규모이며 비각의 전면 윗부분에는 『삼년거려일부도가(三年居廬一不到家)』라는 사액문(賜額文)을 새긴 편액이 걸려 있다.
정려비와 비각 모두 중종 30년(1535)에 세워진 것으로 정려의 건립이 엄격하던 시대에 정표가 내려져 후세에 본보기가 될 만하고, 당시의 풍속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향토적으로도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이 비는 처음에 묘소 남쪽 백천(白川)가에 있었으나 홍수로 인하여 침몰된 것을 인근 광녕산 기슭으로 이건하였다가 또다시 풍우로 퇴락한 것을 1818년 현재의 장소에 비각을 건립하여 안치한 것이다.
자료담당자
문화관광과     054-930-8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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