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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흥야매잠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3길 27
구분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445호(2012년 10월 4일)
문의
문화관광과(문화재) 930-6792

주변정보

상세내용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이 송의 진백(陳栢)이 지은 『숙흥야매잠』을 8장으로 나누고 주해한 것이다. '숙흥야매'란 말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편(小宛篇)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숙흥야매잠』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힘써야 할 일과 마음가짐을 기술한 것이다.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은 조선 선조 8년(1575) 성주의 천곡서원(川谷書院)서 간행된 목판본이다.『숙흥야매잠』의 주해자 노수신은 자가 과회(寡悔), 호는 소재(齋), 이재(伊齋), 암실(暗室), 여봉노인(茹峯老人)이라 하였으며, 조선 선조 6년(1573) 우의정, 선조 11년(1578) 좌의정을 거쳐 선조 18년(1585)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의(文懿)였는데, 후에 문간(文簡)으로 고쳐졌다.『성주의 천곡서원은 조선 명종 13년(1558) 성주 목사 노경린(盧慶麟)을 중심으로 유림의 공의로 벽진면 외기동에 영봉서원(迎鳳書院)으로 창건하였는데, 후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중심이 되어 개칭한 것이다. 서원에 정자(程子), 주자(朱子), 김굉필(金宏弼),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의 위패를 모셨고, 조선 고종 5년(1868) 철폐되었다.『숙흥야매잠』은 간기(刊記)를 통해볼 때 초주갑인자본을 번각한 것으로, 구절마다 오른쪽 아래에 방점이 있고, 구절 내에서도 의미를 쉽게 파악하도록 가운데 방점이 있다. 조선시대 서원이 아직 서적을 본격적으로 간행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천곡서원에서는 일찍부터 서적을 간행하였으며, 선현의 문집이 아닌 성리학 연구와 생활에 필요한 서적을 간행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전적이다.
자료담당자
문화관광과     054-930-8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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