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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청풍비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478-2
구분
도지정 기념물 제 82호(1990년 8월 7일)
문의
문화관광과(문화재) 930-6792

주변정보

상세내용

해동청풍비는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에 비분강개하여 향중사회에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중 일경에 피체(被逮)되어 잔혹한 위협과 집요한 회유에도 동요되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키다 순절한 자하(紫下) 장기석(張基奭, 1860~1911) 의사를 기리기 위하여 1936년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기념비이다. 비석은 1937년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의미를 감지한 일제 식민경찰에 의해 파괴되어 계천(溪川)에 버려졌다가 1946년 유림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해동청풍비의 곁에는 왜경이 비석을 파괴하려 하자 자결로 항거한 부인 박씨의 기열비(紀烈碑)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평평한 바닥돌 위에 비신을 세운 간단한 형태로 이수(螭首)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320㎝, 넓이 110㎝, 두께 45㎝의 규모로 되어 있으며, 현재의 비신은 건립된 뒤 일경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다시 수습하여 복원했기 때문에 당초 파괴할 때의 흔적과 다시 맞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비신의 앞면에는 '해동청풍(海東淸風)'의 큰 글자가 깊게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946년 수습 복원하였을 때, 비석의 건립경위를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짓고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해동청풍비는 건립연대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비를 세우게 된 동기와 그 주인공인 장기석 의사의 충의와 절개, 왜경에 의한 파괴 및 그 파괴를 저지하기 위한 부인의 자결을 통한 항거, 광복 후 파괴된 비편을 수습하여 재건하고, 거기에 김창숙의 글과 김구의 글씨를 새겼다는 데서 역사적?교육적인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의열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자료담당자
문화관광과     054-930-8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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