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해하기 성주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해하기

  • 홈 아이콘
  • 이해하기
  • 성주인물
  • 배덕문

배덕문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인쇄
  • 성주군 페이스북바로가기
  • 성주군 트위터바로가기
우리 고장을 수복한 의병대장 배덕문 선생

선생은 성산 배씨(星山裵氏)로 현(俔)의 후손이며 자는 숙회(叔晦), 호는 서암(書岩)이다. 1525년(중종 12년) 주(綢)의 아들로 태어나서 향년 78세로 1602년(선조 35년)에 돌아갔다. 선생은 천성이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행실이 단정하였다. 6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하루는 노루가 병아리를 차고 문앞을 달리는데 뭇 아이들이 떠들며 구경한다고 법석을 떨었으나 선생은 태연히 독서만 하였다고 한다. 10세에 칠봉 김희삼(七峰 金希參)에게 성리학을 배웠고 1553년(명종 8년),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주서(注書), 한성서윤(漢城庶尹)을 거쳐 언양, 영덕, 울산, 고부 등지의 현감, 군수를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倭)의 제3군 흑전장정(黑田長政)은 김해에 상륙, 거창, 고령을 거쳐 음력4월27일, 당시의 성주목사 제 말(諸沫)을 죽이고 성주성을 점령, 왜군의 앞잡이가 된 중(僧) 찬희로 하여금 성주목사를 시켜 장차 성주의 백성들을 도륙하려고 하였다. 이에 공은 68세의 노구를 일으켜 성주성을 쳐 들어가 성 아래서 적승(賊僧) 찬희와 적장 흑전구(黑甸句)를 쳐 죽이고 성주성을 수복하였다.

이 때에 선생은 적장의 물건인 금부채 1자루와 큰 칼 2자루를 빼앗아 후손에게 전하였는데 부채는 잃어버리고 지금은 종갓집에 큰 칼 1자루만 남아 있다 한다. 임진왜란 때 선생의 아들 설(楔)은 경상도 수사로 활약하고, 건(健)은 왜군과 싸우다 여남현(汝南峴 : 지금의 금릉군내 소재)에서 전사하였다.

선생이 돌아간 후 1610년(광해 2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춘추관사(同知經筵春秋館事), 세자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을 증직 하였고, 1873년(고종 10년)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사(知經筵義禁府事),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 지춘추관성균관사(知春秋館成均館事),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을 증직하였다. 1920년 후손들이 대가면 도남동 뒷개마을에 신도비를 세웠다.

업데이트 날짜 : 2017-12-15 16:59:45

자료담당자
문화관광과     054-930-8371~3
만족도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