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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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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신 이맹전 선생

어린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대신 왕위를 차지한 세조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선비들을 다시 기용하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한번 마음을 굳게 먹은 선비들은 좀처럼 뜻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성삼문(成三問) 등 죽음으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死六臣)에 대하여 세상을 등지고 살던 선비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원호(元昊), 이맹전(李孟專), 성담수(成聃壽), 조려(趙旅) 등을 생육신(生六臣)이라 부른다.

선생의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 본관은 벽진(碧珍)으로 대제학 견간(大提學堅幹)의 현손인 병조판서 심지(兵曹判書審之)의 아들로 태종 때에 성주군 초전면 홈실에서 태어나서 선산(善山)에서 자라, 성종 때 90세를 일기로 돌아갔다.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선산의 월암서원(月岩書院),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정목(貞穆)이라 했다가 정조 때 정간(靖簡)으로 개시(改諡)되었다.

1427년(세종 9년)에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한림(翰林), 정언(正言)을 거쳐 외임(外任)을 자청, 거창현감(居昌懸監)이 되어 청렴결백하게 선정을 베풀고 있을 때, 수양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현감직을 내어놓고 선산 강정리(善山綱正里)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전원(田園)에 묻혀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여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혹 누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자기 눈이 멀었다고 하며 사람을 쳐다 보지도 않았다.

'나라가 망한 것을 멀쩡히 눈을 뜬 채 본 사람인데 눈을 떠서 뭣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청맹과니 행세를 하였던 것이다.
강호 산인 김숙자(江湖山人 金叔滋)가 선생의 집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학문을 즐기는 그였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는 인연을 끊었으나 김숙자만은 자주 만나 서로 뜻이 통했으므로 곧 백년지기(百年知己)처럼 가까이 지냈다.

선생이 거창현감(居昌縣監)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온 후에도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궐을 향하여 앉지도 않았다. 세상에 뜻이 없으니 생계의 걱정을 할 리가 없었다. 집안 살림이 너무 가난했지만 선생은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방바닥에는 까는 자리조차 없고 밥 먹을 때는 수저조차 없었으나 조금도 그런 것에는 개의하지 않았다. 그 중에도 자녀는 많아 슬하에 아홉 명이나 두고 있었다. 때때로 선생은 아들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이 아비를 잘못 만나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내 면목이 없구나.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한 번 세상에 나가 출사(出仕)하여라. 나는 이 세상에 나가지 않겠지만 후일이면 반드시 너희들에게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하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곤 하였다. 선생의 아들들도 부모의 명을 거역하지 않고 "아버님을 너무 염려하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버님 뜻하신 대로 행하시옵소서. 소자들도 좋은 시대가 오면 세상에 나갈 것입니다." 하고 서로 위로하였다.

누가 보든지 선생의 생활은 너무 초라하였지만 일체 세상 사람들과는 인연을 끊은 채 호연한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말년에는 김 숙자와도 만나지 않고 오직 김 숙자의 아들인 김 종직(金宗直) 한 사람만 만나고 지냈다. 김 종직은 때때로 선생을 찾아와서 세상 얘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세태는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이니 모를 일일세. 젊은 사람들이 이제는 나라를 바로잡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자네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야 하네. 우리 나라의 학문은 송나라의 좋은 학문을 배워 온 것이니 야은(冶隱:길재) 선생에게서 배운 그 좋은 학문을 세상에 널리 펴 놓아야 할 것일세."
"선생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도 세상에 나가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나가야 하고 말고. 나같이 이미 늙은 사람은 조정에서 행하는 불의의 짓을 보고 싶지 않지만 젊은 자네들은 세상에 나가 그 불의에 대항하여 나라를 올바르게 잡아야 하는 것일세."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선산의 금오산(金烏山) 아래에 묻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선생은 이와 같이 젊은 유생을 격려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도록 타이르고 이끌어 마침내 점필재 김종직이 출사(出仕)하게 되었던 것이다.

업데이트 날짜 : 2017-12-15 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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