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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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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은혜에 보답한 이사룡 선생

선생은 성산 이씨(星山李氏)로 능일(能一)의 후손이며 정건(廷建)의 아들로 1612년(광해 4년)에 태어나 향년 29세로 1640년(인조 18년)에 돌아갔다.

1640년, 청나라가 우리 나라에 대하여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원병을 요구하자 포사(砲士)로 징발되어 금주(錦州 : 중국)싸움에서 명나라 조대수(趙大壽)의 군대와 대전했으나 탄환을 넣지 않고 공포로만 싸우다가 청나라 군사에게 발각되었다. 이에 고문을 당하면서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로부터 입은 은덕을 상기시키며 배반의 불가함을 역설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명나라 장수 조대수가 '대명충신이요 조선의사'(大明忠臣 朝鮮義士)라 크게 써서 걸고, 청 태조도 의로운 일이라 하여 소현세자(昭顯世子)가 환국할 때 그 주검을 운구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니 인조가 지나는 길의 5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예장하도록 하고 월항면 작촌 고산에 안장하게 하였다. 또 당시의 성주목사 최유연(崔有淵)에게 명하여 그 묘에 제문을 지어 제사를 올리게 하였으며, 1692년(숙종 18년) 향리 사람들이 그의 옛터에 사당을 짓고 옥천(玉川)이라 하고, 1793년(정조17년) 성주목사에 증직되고, 정려를 지어 1796년 충절사(忠節祠)라 사액(賜額)하였다.

업데이트 날짜 : 2017-12-15 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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