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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채찍도 두고 온 청백리 이약동 선생

선생은 벽진 이씨(碧珍李氏)로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이며 1416년 (태종 16년), 현령 덕손(德孫)의 아들로 태어나 향년 78세로 1493년(성종 24년)에 돌아갔다.

1451년(문종 1년), 36세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거쳐 1454년(단종 2년), 감찰, 황간현감 등을 역임하고 1458년(세조 4년), 지평(持平)이 되고 이듬해에 벼슬을 떠나 몇 년간 학문을 연구하다가 1464년(세조 10년), 선전관(宣傳官)으로 복직, 1466년에 종부시정(宗簿寺正), 구성부사(龜城府使) 등을 역임하고 1468년, 병으로 사직, 1470년(성종 1년), 제주목사(濟州牧使)가 되어 부하 벼슬아치들의 부정을 단속하고, 민폐를 없애며 공물(貢物)의 수량을 감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474년(성종 5년),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1477년에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78년 한성좌윤(漢城左尹), 이조참판, 1489년 개성유수(開城留守) 등을 역임하고, 1491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선생은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벼슬살이로 나라에서는 청백리(淸白吏)로 뽑혔으며 항상 그 자손들에게는 "금을 보고도 돌같이 생각하라."고 타일렀다. 벼슬에서 물러나와 고향에 돌아와서는 김종직(金宗直), 조 위(曺偉) 등과 친하게 사귀었다.

성종 임금이 내린 선생의 제문에도 지성과 순직(純直)을 칭송하였으며 평정(平靖)이라 시호를 내렸다.

업데이트 날짜 : 2017-12-18 10: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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