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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와 이직 선생

선생은 성주 이씨(星州李氏) 장경(長庚)의 증손, 인민(仁敏)의 아들로 자는 우정(虞廷), 호는 형재(亨齋), 1362년(공민왕 12년)에 태어나 향년 70세로 1431년(세종 13년)에 돌아갔다.

생애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노력하여 1377년(우왕 3년), 1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고려말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지냈다. 1392년(태조 1년), 태조를 도와 개국 2등 공신이 되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으며, 1393년 도승지(都承旨), 중추원사(中樞院事)가 되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7년, 대사헌(大司憲)이 되고, 1399(정종 1년), 중추원사(中樞院事)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잦은 왕자의 난으로 태조가 함흥에 가서 있을 때, 태종에게 자청하여 함흥에 가서 태조를 뵙자 태조가 조용히 선생을 만나보고 귤을 내리니 먹지 않고 품에 간직하기에 태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자손에게 줄까 합니다."하고 엎드려 통곡함으로써 태조도 감동하여 환궁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402년(태종 2년), 대제학(大提學)이 되고 1405년, 6조의 편제가 정해지자 처음으로 이조판서가 되었다.
1412년(세종 6년), 영의정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27년, 벼슬에서 물러났다.
1431년(세종 13년), 왕명으로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선생이 이의 책임을 맡아서 금속활자 계미자(癸未字)를 만드니, 독일의 구우텐베르그보다 52년이 앞섰으며, 우리 나라로서는 1234년경(고려 고종 21년)에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니 서양보다 200여년이 앞선 셈이다.

옳은 일에는 굽힐 줄 모르다.

1415년(태종 15년), 태종이 세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을 폐하고 셋째 충녕대군(忠寧大君 : 뒤의 세종대왕)을 세우려고 할 때 장남을 폐하고 지차(之次)로 세자를 삼는 것이 불가하다고 황 희(黃喜)와 함께 끝내 반대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양천(陽川)으로 귀양을 갔다.

업데이트 날짜 : 2017-12-18 10:50:59

자료담당자
문화관광과     054-930-8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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