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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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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 외교의 제 1인자 정곤수 선생

정곤수 선생은 청주 정씨(淸州鄭氏)로 자는 여인(汝仁), 호는 백곡(栢谷), 1538년(중종 38년), 남산리 유촌(南山里柳村 : 지금의 대가면 칠봉동)에서 사중(思中)의 아들로 태어나 6세에 종숙 승문(承門)의 양자가 되었으며 처음 이름은 규(逵)라 하였는데 나라에 세운 공으로 선조가 곤수란 이름을 내렸으며 향년 65세로 1602년(선조 35년)에 돌아갔다.

장성하여 퇴계 이황(退溪 李滉)에게 심경(心經)을 배웠으며 1567년(명종 22년) 진사가 되고, 1572년(선조 5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경력을 거쳐 1576년,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뽑혀 부사과(副司果)가 되고, 이어 통정대부(通政大夫), 상주목사, 파주목사를 거쳐 1583년(선조 16년)에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1586년 영월 장능(莊陵 : 단종의 능)에다 사묘(祠廟)를 세워 단종의 위판을 봉안하고, 1587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큰 기근을 구제하고 돌아와 가선대부(嘉善大夫), 서천군(西川君)에 봉해지고, 대사성(大司成)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오르고, 이어 병조와 이조의 참판,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우승지로 선조를 의주로 호종(扈從)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로서 청병진주사(請兵陳奏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원병을 청했더니 명나라 조정이 거절하므로 황제가 있는 황극전(黃極殿) 뜰에서 밤낮 3일간 피눈물로 호소하여 그들을 감동시켜 병부상서(兵部尙書) 석 성(石星)으로 하여금 황제의 승낙을 얻어 원병을 보내도록 하였다.

1592년, 명나라의 원병 선발대로 요동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이 16,700명을 이끌고 왔으며, 이듬해 정월, 이여송(李如松) 제독이 40,000병을 이끌고 와서 평양을 수복하고 계속 남쪽으로 왜군을 쫓아 내려오니, 1595년에 예조판서, 1596년, 의정부좌찬성으로 벼슬이 올랐으며, 선생이 돌아간 후 1604년(선조 37년) 충근정량갈성효절협책호성공신 1등으로 영의정을 증직하고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에 봉해지고 충익(忠翼)이라 시호하였다.

선생은 글씨에도 능했고 전고(典故 : 왕실 또는 나라의 길흉에 관한 의식이나 옛날부터 내려오는 규칙)에 밝았다.

업데이트 날짜 : 2017-12-18 11: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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