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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전통이 함께 어우러진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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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성산동고분군

    •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경
      • 星州 星山洞 古墳群 (성주 성산동 고분군)
      • 지정별 : 사적 제 86호
      • 위치 : 성주읍 성산리 산61 일원
      • 규모 : 129基(기)
      • 재질 : 석재, 흙
      • 시대 : 성산가야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이미지 지도 출력
  • 상세내용
    이 고분군은 성산(星山, 해발 389.2m)의 북사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성주지역 최대의 고분군(古墳群)으로 5~6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은 129기이나, 파괴되어 멸실되었거나 봉토(封土)가 깎여나간 고분을 포함하면 그 수는 수백 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고분군은 1918년 1?2?6호분, 1920년 대분(大墳), 팔도분(八桃墳) 등 일제시대에 모두 5기가 발굴조사 된 바 있으며, 1986~87년에 걸쳐 남쪽 능선에 분포하는 대형 봉토분(封土墳) 5기를 발굴하여 고분의 구조와 유물의 성격 등을 일부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고분군은 크게 막돌이나 깬 돌을 이용하여 석실의 네 벽을 축조한 할석식(割石式) 석실분과 석실의 네 벽을 넓적하고 길쭉한 판석을 세워 만든 판석식(板石式) 석실분의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며, 매장주체가 묻히는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묻는 부곽(副槨)을 갖춘 다곽묘(多槨墓)로 되어 있고 주곽의 석실은 크기에 비해 유물이 빈약하고 부곽에는 넘칠 정도로 많은 유물을 부장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토기가 가득 채워져 있는 부곽의 한 귀퉁이가 빈자리로 남아 있어 노비 등의 순장자가 매장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의 발굴조사에서 고리칼[환두대도(環頭大刀)], 금제 귀걸이[이식(耳飾)], 은제 허리띠[과대(帶)], 관 꾸미개[관식(冠飾)]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86년 발굴조사에서 큰 항아리[대호(大壺)]를 비롯한 긴 목 항아리[장경호(長頸壺)],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短頸壺)], 굽다리접시[고배(高杯)] 등 토기류와 은제 말띠드리개[행엽(杏葉)], 재갈 등의 마구류(馬具類)를 비롯한 2,07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 성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귀걸이와 토기등의 사진성주 성산리 고분군 전경 사진들
  • 인근관광지
    성밖숲, 성주향교, 동방사지 7층석탑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성산리 방향 (승용차 5분 소요)

자료담당자 : 문화재 / 933-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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