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리는 성주읍은 물론 성주군 전체의 생활중심지로서 印懸山에서 구불구불 용트림해 내린 邑基의 主脈이 마을뒤에서 標高 약80m의 鳳頭山의 丘陵으로 맺혔고 伊川이 東流하면서 曲流해 景觀이 秀麗한 리이다.
이 지역은 高麗 建國初期 부터 京山府의 邑基로 발전해서 이곳에 禮山里, 三山里등 읍내 10個里가 당시부터 各坊에 준한 內坊인 4개리로 편제되어 龍山里(坊)에 속하였으며, 1914년 行政區劃改編때 京山洞이 되어 현재 8개 行政里로 구분한다.
성주읍 중심에서 서편으로 33번 국도를따라 약 2km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류하는 伊川과 칠봉산에서 흐르는 沙川이 합류하는 갯마을이다.
통일신라이래 성주읍(경산부·성주목)의 각지에 있었던 방에 준하는 마을로서 백전리 및 대가면에 속해있는 용흥리와 더불어 本牙里에 속하였고, 914년 행정구역개편 읍내의 4개리(용산·본아·남산·북산)를 통합할 때 성주읍에 속하였다.
가야산 산맥이 修道山과 厭俗山을 돌아 狐嶺고개를 지나면서 관봉에서 일곱봉우리를 이루어 七峯山을 이루고그북으로 대가면과 경계하며 성주읍으로부터 서남쪽으로4km거리에 자리한 마을이다.
’大皇’이라는 마을이름은 마을 뒤산에 大皇堂이 있었기 때문인데, 대황당은 원시시대부터 할미신[老姑神]을 토속신으로 하여 제사를 드리던 민간신앙의 유제로서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각 지방의 군현단위마다 神堂이 설치되었다.
성주읍의 중심에서 정동과 정남의 방향사이의 伊川건너 성산(389m)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서 마을앞은 성주읍을 관류하는 이천이 曲江이 되어 동류하고 넓은들이 관망되는 곳을 골라 앉았고 도심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있어 편리한 교통과 함께 취락환경이 조화로운 곳이다.
기원전 2∼3세기경부터 가야의 성읍국가로 이루어져 기원초 성산가야국으로 발전했던 고대문화의 본거지였으며, 신라말부터는 경산부의 남산리에 속하여 1885년(고종32년) 성주읍내의 4개리와 함께 남산리(방)에서 남산면이 되었다가 1814년 성주면으로 되고 1979년 성주읍이 되었다.
성주읍을 감돌아 동류하는 이천의 곡강을 사이로 읍내에서 왜관과 선남방향의 양갈래의 국도를 접해있는 기름진 들녘부분에 위치해 있다.
고려초기에는 경산부의 용산리에 속했고 1914년 3월 행정구역 통폐합때 읍내의 용산, 본아, 남산, 북산리와 함께 성주면으로 되었다가 1979년 5월 읍으로 승격되고 1988년 1월 동을 리로 명칭 변경했다.
성주읍의 동북면에서 白川사이로 月恒面과 접경한 江村으로, 통일신라이래 지금의 月恒面 甫岩과 함께 唐沼坊이었고 1914년 성주면에 편입되었다. 자연촌으로는 답계, 말뱅이, 새정지 등이 있다.
성주읍의 북부에 위치하고 邑基의 鎭山인 印懸山(185m)의 완만한 구릉이 읍의 중심부로 용트림해 남향해 돌아 내리는 지맥을 의지해 자리해 있고 성주에서 金泉으로 나가는 도로를 접해있다.
1895년(고종 32년) 5월의 관제개혁때에는 龍山, 南山, 本牙, 北山의 4개 里가 面이 되었는데, 예산리의 일부 및 龍山里와 초전의 뒷뫼, 운포, 와룡 등과 더불어 북산면에 속하였다.
자연촌으로는 연산, 도덕골, 고두무골, 외야골, 상당골 등의 마을이 이웃하여 있다.
성주읍의 중심부에서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구한말 관제 개혁시 세록골, 예동, 교촌, 신풍리는 北山面에, 물개(若夫洞)는 龍山面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성주면 예산동으로 통합되었다.
星州邑城을 경계로 남으로는 경산리와 접하고 북으로는 성주중학교 뒤쪽 구릉지에서 금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남으로는 왜관통로 충혼탑 옆 구릉지에서 삼산리와 경계를 이루어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산리는 옛 경산부의 읍기로서 東方寺址七層石塔, 星州鄕校, 石氷庫址, 官獄址, 裵氏井, 勵祭壇址 등 많은 文化遺蹟을 保有하고 있는 마을이다.
성주읍의 중심에서 서북부로 벽진방향의 30번 국도를 접해서 마을앞 들건너에는 이천이 흐르고 동편은 읍의 주맥인 완만한 구릉(표고 800m)이 대금산과 봉두산으로 멎어 있고 예산리와 경산 리를 이웃하여 자연부락으로는 불무골, 목우물로 구분하여 마을앞이 넓게 트여 취락의 위치가 좋 은 곳이다. 백전리는 고려초에 경산부의 본아리에 따랐고 1895년(고종 32년) 본아면, 백전동이 되고 1914년 성주면에 편입되었다.
성주읍의 서북부에서 성주∼무주간 30번 국도가 관통하고 서편은 벽진면과 접경한다. 마을앞은 넓은 이천평야와 멀리 서남으로는 가야산의 장관이 하늘을 이고 있다. 뒤로는 용자의 지명이 원만한 구릉이 용트림해 앉아 있다. 통일신라이래 경산부 북산리에 속했고, 1895년(고종 32년) 북산면 용산동이 되고 1914년 읍내의 용산면(방) 본아면(방) 북산면(방)이 합면되어 성주면이 되었다. 1979년 5월 성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각동이 리로 개정되었고 조지뫼, 이방동, 용암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업데이트 날짜 : 2023-01-0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