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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면은 성주군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과 남쪽은 고령군과 경계하고 서쪽은 수륜면을 북쪽은 대가, 성주읍, 선남면등과 접경하며 염속산(870m)에서 내린 지맥이 칠봉산(516m)에서 북으로는 굴티, 두리티로 돌아내린 일맥은 이천에서 멎었고 서남으로는 추산(524m)과 칠령제, 이리제, 솔티제로 달려내린 산맥이 있어 북과 남은 산악지고 그 중앙부로 두이천(신천)이 서에서 동류 하면서 10km의 중적평야( 積平野)를 이루며 가죽정에서 낙동강에 유입한다

용암면 소재지는 동경 128˚, 북위 35˚에 자리하여 이곳 중심으로 동북의 선남면과 남으로 고령군에 통래되고 북으로 성주읍과 동남으로 고령다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주민생활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구미∼현풍간 고속도로 IC가 생기면 교통요충지로서 발전의 여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이후 조곡, 초곡, 두의곡, 대동방으로 구분되여 조곡방은 대봉, 상신, 죽전, 마월, 계상리지역이고 초곡방은 중거, 장학, 명포, 유서의 지역이고 두의곡방은 덕평, 본리, 상언, 용정, 선송, 용계지역이고 대동방은 문명, 운산, 기산, 동락, 사곡지역을 맡아 1300여년의 긴 역할을 해냈다. 1914년 3월에 조곡과 초곡이 병합되여 성암면이 되고 두릉과 대동면을 병합하여 용두면이 되었으며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이 합면하여 지금의 용암면이 되었다.

1983년 2월 유서리가 선남면으로 이관되고 1989년 1월엔 명포, 장학리가 선남으로 이관되어 법정16개리와 행정26개분리로 되어 있으며 또한 근교농업의 적지이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전지향적인 면이다. 1983년 2월 유서리가 선남면으로 이관되고 1989년 1월엔 명포, 장학리가 선남으로 이관되어 법정16개리와 행정26개분리로 되어 있으며 또한 근교농업의 적지이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전지향적인 면이다.

  • 귀 연(龜淵)
    • 관산마을 서편, 기성리마을 북쪽에서 같은 마을권을 이루어 있는 동네다. 서남 山峰이 거북형이라하여 마을 이름을 귀연이라 했다. 東來鄭氏 집성마을이다.
  • 잉애실(雲谷, 綜谷)
    • 귀연마을 서편계곡을 끼고 서남향한 마을이다. 잉애는 베틀의 날실을 움직이는 잉앗대와 잉아실(綜絲)을 표방한 마을 이름이다. 林氏多數의 조그마한 산촌이다.
  • 종지골(從池谷)
    • 운산리를 흐르는 계곡의 상류에 들어앉은 마을이며 마을 남쪽으로는 구룡골 고개넘어 용암면 소재지로 나가는 길이있고 북쪽으로 질매재 넘어 선남면 유서동으로 통래되는 四通山谷의 要衝마을이다. 南陽洪氏 집성마을이다.
  • 모 산(牟山, 池山)
    • 종지골 동편에 동남향한 산촌이며 7호의 마을이다. 姜氏등 各姓이 옛터를 지키고 있다.
  • 괴평리(槐坪里)
    • 이 마을은 회나무(느티나무)가 있는 들마을이라는 뜻이고 회나무는 옛날 중국 주나라에서 후한시대까지 3공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홍수로 인하여 현 지방도 905호선변으로 이주하여 약50호의 연안차씨 집성마을이며 연안차씨는 영조때 초계에서 성주에 입향하여 살고있고 괴은(槐隱)차상열을 향사하는 모괴정이 있다.
  • 두리실(冠洞)
    • 용암면 중심부를 서편에서 동으로 관류하는 두의천(신천) 중간이며 마을 안산이 명기를 가득담은 뒤웅박의 형국이 라하여 뚜리실로 했다가 향지에 두의곡(실)로 표기했다. 옛날 두리실에는 관부(官府)가 있었으므로 관동이라 한 것 같다. 서기685년(신라 신문왕5년) 두의곡방의 본거지 마을로 깊은 역사의 현장이 명포로 넘어가는 산길도 두의곡방의 영경이라 두리티라 하고 명포로 1895년 두릉면이 되고 1914년 대동면과 합면하여 용두면으로 되면서 1300년의 면소재지의 막중한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유서깊은 두리실에는 안동권씨의 집성마을로 1456년 가산군수를 지낸 권유검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태조의 왕비 원경왕후 질녀인 그의부인 민씨와 은거 이 마을에 입향하여 그 후손들이 선대를 추모하여 영모제를 짓고 영야헌유허비, 두릉예찬팔경시비 등이 있으며 특히, 국가지정 제87호 중요무형문화재 명주짜기 기능보유자 조옥이(1920년생)와 경상북도 지정 제16호 무명짜기 기능보유자 백문기(1928년생)가 있는 전통있는 마을이다.
  • 회 목
    • 두리티고개 남쪽1km에 위치한 마을이고 회목의 원명은 야시목(여우목)에서 나온말이다. 이 곳 30여호는 괴산피씨 집성마을이고 괴산 피종남을 향사하는 자인당에서 또한 시조공 경정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매년 5월초에 제례행사가 있으며 안회목마을터 뒷산에는 고려말의 대가인 도은 이숭인 묘소가 있다.
  • 문 산(文山)
    • 경용암면의 동북 끝에 도로를 접해서 마을서편 문산(104m)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마을을 담장같이 둘러싸고 자리한 자연경관이 조화된 마을이다.
    • 東來鄭氏가 집성촌을 이루며 농촌경제를 선도한 부촌이다. 正祖때 平山人 申現이 입향해서 후손이 대를 이어산다. 義城人 白下 金敬林의 아들 伯 金昌洛(1924-1989)이 여기서 나서 프랑스 국제미전에서 금상을 탔고 국내 기록역사서 등 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세종대 藝大學長을 역임했었다.
  • 벌 뫼(蜂山)
    • 문산마을 남쪽 1.2km에 표고 72m의 벌뫼 동남으로 터장은 마을이다. 동쪽으로 2km에 이천이 낙동강에 합류하고 아득한 곡강의 壯觀에 두의천이 3가合되는 풍요한 環境이다. 順興安氏, 東來鄭氏 등 40호의 各姓마을이다.
  • 더너리(登魚里)
    • 벌뫼 서편 문명리와 운산리의 안들(內評)부위의 들머리 마을이다. 더너리는 들어앉은 뜻의 "든"과 넓은들의 환경을 묘사한 "넓은마을"의 변화한 "드넓里"의 固着語로 생각된다. 慶州崔氏 등 약10호의 各姓부락이다.
  • 대명동(大明洞)
    • 기산리의 관산마을에서 선남면으로 나가는 도로에서 서편으로 꺽어든 갈림길의 더너리마을 서북 계곡상류 산골에 자리하여 동남향한 古村이다. 1597년(宣祖 30年) 丁酉倭亂때 明나라 장수 浙江人 明菴 徐鶴(1566年)이 中軍 施文用과 함께 입국하여 明菴은 이마을에 卜居를 정해 마을을 大明洞이라 했다.
    • 大明洞은 明나라를 遠慕하여 지은것이고 그때 壇을 설치해서 고국과 선대를 遠拜했는데 이 壇拜禮에는 그때 함께 入鄕定住한 국내유일의 浙江徐氏와 浙江施氏(수륜면 보월리 아래맏질) 杜陵杜氏(수륜면 계정리 원기부락) 星州石氏(中國 潮州 石氏 石星의 아들 : 운수면 화암리 꽃질)등이 합동참배를 하고 있다. 浙江徐氏 집성마을이고 星州石氏(潮州石氏) 始祖의 墓所도 있다.
  • 구룡골(九龍谷)
    • 용암초등학교가 있는 남향한 마을이다. 갓골과 함께 2천년이상의 역사를 갖고있는 마을로서 자연신에 안전과 소망을 빌던 당제단의 터가 있고 마을 뒤 새암골의 우물은 고색이 짙은 옛유적이다.
    • 또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새마을사업이 가정먼저 이루어진 개화된 마을로서 참외재배와 한우사육등으로 복지농촌 실현이 앞당겨진 소득높은 마을이다.
  • 갓 골(山洞)
    • 산을 고어로 "갓"이라 했다. 뒷산에는 풀무가마터가 있는데 삼한부족사회 때부터 병기 생활용구의 생산정비하는 곳이며 뒷산의 고분은 옛날 부족국시대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성산이씨와 평택임씨등이 살고있는 생활이 윤택한 마을이다.
  • 안 언(安堰, 案上彦)
    • 상언리와 용정리는 용암면 소재지 마을이다. 2개의 리(里)가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양분공치(共置)하고 있으며, 또한 교통ㆍ산업의 중심지이다.
    • 안상언 마을은 소재지 안쪽이고 윗쪽에 있는 위치표현으로 이를 구분하여 상언, 안상언으로 표기법에 따라 쓰고 있다.
    • 안언은 영남지역의 중요한 역(驛)으로서 고령과 합천으로 드나드는 상급 국도이고, 안언의 옛이름 신안(新案)의 관계지명이며 안상언 마을에는 김해김씨, 성산이씨, 평산신씨, 밀양박씨등 30호의 마을이다
  • 장자골(長子谷, 壯者谷)
    • 맑은돌(미근돌) 가야의 천년, 맑은돌방의 1300년의 유서깊은 유적지이다. 약 40여호의 가로로 이루어진 마을이며 약 435년에 김귀남 장군이 마을에 입향할 당시 뒷산에 돌이 많다 하여 관석이라 명하여 왔다고 한다.
    • 선조 때 경주인 성 김귀남이 진주 덕산에서 가천면 마수리에 입향하여 그 자손이 살며 성암의 묘소가 있다. 선조 때 김해인 김춘인이 창원에서 용암뱀원에 입항햐여 이 마을에 후손이 살고 있다 . 신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 지수골(智水洞)
    • 장자골 마을 아래 성주에서 굴티고개를 넘어 서남계곡을 끼고 지방도에 접해있는 마을이다. 密陽朴氏, 新安朱氏, 星山裵氏, 金寧金氏, 淳昌 氏등 各姓이 많이 살았고 약20호의 산촌이고, 烈婦 金氏의 旌閭가 있는데 金寧人 金有權의 딸이 成武의 아내로 시집가서 夫君을 따라 殉節한 애절한 사연이 전해진다.
    • 淳昌 氏는 純祖때 宜寧에서 楠이 금수면 회峯에 入鄕하여 그 후손이 살고 있다. 이마을의 朱氏는 中國 河南城 新安縣의 朱文公(朱熹)의 25世孫 朱光成이 1700년대 開寧에서 入鄕해서 文公을 追享하는 新安齊, 陽書堂을 창건하고 公의 影幀을 못고 400年의 儒道를 닦고 있다.
  • 사수골(泗水谷)
    • 지수골 남쪽 400m 거리의 지방도변에 위치한 약10호의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성암산(540m)이 있고 남쪽으로는 월곡마을과 가깝게 하고 있다. 泗水는 洙水와 함께 中國山東省 魯나라 孔子의 고향 山水地名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 화진계(花眞溪)
    • 성주읍 차동골에서 굴티고개 넘어 용암면의 첫마을이며 大皇山에서 동류하는 초곡천의 沃土를 내려보며 남향한 마을이며 약15호의 星山裵氏 集姓마을이다.
  • 중 터(中基)
    • 화진계마을 동쪽 500m에 지수골에서 동류하는 계곡이 완만한 평원을 이루며 계곡과 어울리는 산수풍경이 安溫한 약15호의 마을이다.
  • 용 정(龍亭)
    • 용암면 소재지 중심에서 마을동쪽 표고124m 수려한경관에 어울리게 창애기암이 있어 용두봉이라 하고 연이어 4개의 암봉(岩奉)이 동남쪽으로 늘어있어 용두산능이라 하고 용두봉산아래 맑고 깨끗한 두의곡천(신천) 곡류를 곁드려 도원지경으로 불리우며 고려때부터 경산부 부사(목사) 수시 순시해서 안안역을 감독하는 와정이 있다.
    • 용암면사무소가 위치한 소재지 중심마을로 농협, 파출소, 우체국, 마을금고, 복지회관등 기관단체가 들어서 있으며 소도읍가꾸기와 우회도로개설등 교통중심지로서 꾸준히 발전 가능성이 높은마을임.
  • 회 봉(回奉, 新安)
    • 용암면 소재지에서 고령방향 남쪽 1km 이리재 구릉아래 동향한 고촌 마을이다. 이 마을 중심으로 반경 5km의 지역은 세원전 4C경부터 가야부족 성읍국 이리국과 통일신라 이후의 일리군 성산군 신안현시대까지 약2천년의 역사의 의미깊은 현장이다.
    • 이 마을 옆 소규모 공단이 조성되어 가동중에 있으며 고령군 운수면과 경계한 지점에는 알프스농장이 전망좋게 자리해 있으며 수십마리의 사슴을 사육 녹용을 생산해내고 있다.
  • 진건리(眞溪里, 眞境里)
    • 성주읍과 용암면의 경계에서 동남방 지방도로를 접해 성암초등학교가 있는 산간요지의 마을이다. 성암산에서 발원하는 계곡의 兩端水가 합류하는 곳이며 1934年까지의 성암면의 중심지다. 진건리는 眞境里의 古事를 인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宋史에 "金碧照三山 眞境勝人間"이라 하여 仙人이 사는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곳을 의미한다. 약40호의 大村인데 星山李氏가 많고 各姓마을이다.
  • 명 천(明泉)
    • 진건리 서북 1km거리에서 마천과 샛떰을 가깝게 이웃해서 도로를 접해있다. 新安朱氏와 金海金氏가 살았으나 朱氏만 살고 있고 샘물이 특히 깨끗하고 맑은 곳이다. 약20호의 산촌이다.
  • 마 천(磨川)
    • 진건리 서북 2km지점 성주-용암 지방도에 접해서 명천마을과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義城金氏와 金寧金氏가 약20호 살고 있다.
  • 칠선리(七仙里)
    • 용암면 소재지 남쪽 3km 산골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남쪽 3km계곡상류를 오르면 고령군 성산면과 경계하는 솔티고개(230m)있고 약30호의 산촌에 성주이씨가 많고 김해김씨와 남평문씨, 전주이씨등이 살고 남강 이덕명의 유덕을 기리는 원사제가 있다.
    • 마을윗쪽 웃말못은 대구 부사를 지낸 배상익의 아들 배유화가 관직에서 물러나 제자를 가르치면서 사제로서 못을 이루었으며 가뭄이 들면 못 뒤쪽 솔티고개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들 하고 있다.
  • 수양정(垂楊亭)
    • 면소재지 동남1.5km 자리한 905호선 지방도변에 자리한 마을로서 한때 배만마을쪽과 솔티재로 넘나드는 길손이 쉬어가는 주막이 고색을 풍긴마을이다. 현재 송암골재공장이 있으며 각성이 살고 있다.
  • 송 림(松林)
    • 수양정마을 동북 약 1km계곡에 터잡아 서북을 틔여놓고 3면이 산줄기로 쌓여있었으나 송암골재장이 생기고 남쪽이 다소 틔였음으로 농사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인동장씨 장사원 세거지로서 약15호가 살고 있다.
  • 안조실(內租谷)
    • 성암초등학교가 있는 진건리 마을에서 서남으로 갈라진 계곡 상류쪽으로 600m거리에 다소 여유있는 들판을 깔고 남향한 20호의 산촌이다. 마을앞은 표고 130m의 낮은산 고개넘어의 바깥조실과 구분한다. 마을의 형성은 성주군의 모든 자연부락의 경우와 같이 상고때부터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고 가끔 李朝時代 어느王때 마을을 누가 개척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 다만 산사태나 水沒에 의해 몇 개의 마을정도가 가까운 곳에 옮긴 예가 있고(용암 괴평리, 수륜 구정마을 등) 신생부락은 한국동란때 亂民更生村정도의 몇몇뿐이고 그외는 일반적으로 고려초기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안조실 마을에는 肅宗때 沃川에서 沃川人 陸載亨이 1667년(현종 8년) 武科에 登科해서 守門將을 지낸 뒤 이곳에 入鄕했고 濟南 陸鍾祿과 慕菴 陸炳運(1788年)이 世居했다. 星山人 裵晋孫(裵閑의 祖父)의 墓所가 이곳에 있다.
  • 약밭골(藥田谷, 手租洞)
    • 안조실 서편으로 가깝게 접한 마을이며 金寧金氏, 金海金氏 등 10여호의 산촌이다.
  • 갈명골(葛明洞)
    • 성암산(540m) 남쪽 산속의 고원부락이다. 표고 350m의 약15호의 各姓마을이고 한때는 山菜등의 부업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離農의 현실은 산촌을 어둡게 하고 있다.
  • 배 만(蛇院)
    • 용암면 소재지에서 다산면으로 나가는 동남방의 국도 3.5km거리에 면내 최남단부 마을인데 길북쪽 산골에서 남향해 있고 도로변에는 그마을에서 내려온 신생마을인 새마가 있다.
    • 옛날 성주에서 현풍으로 나드는 관사가 숙식하던 뱀원이 있었고 이 뱀원은 안언역원의 보조역원으로 활용되었다. 약30호의 閑洞에 김해김씨가 주류로 사는데 선조때 창원에서 김해인 김춘인이 입향하여 세거지로 하여 그 후손은 이곳과 관석, 인촌, 용정, 회봉마을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청류 김성우가 世居했고 그 후손은 청류제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 새 마(蛇院)
    • 마을북쪽 500m 산골의 배만에서 차츰 옮겨 나온 마을이며 같은 마을권이다. 김해김씨 집성마을이며 약20호의 농가에는 양잠을 힘써 부촌으로 발돋움하여 지금은 참외특수작물재배로 부촌마을이다.
  • 봉 산(封山, 鳳山)
    • 용암면 소재지에서 성주로 이어진 지방도의 3.5km에서 서남방향의 갈림길의 1.5km 지점에 위치하여 두의천변에 자리하여 동쪽으로 조실마을과 이웃하고 있다. 마을 남쪽에는 1400년경 太宗의 胎를 봉안하여 봉산이라 한다.
    • 星山李氏 集姓村인 이곳에는 약30여호가 살고 있다. 義士 李士龍(1612∼1640)의 후손이 월항면 인촌리에 모셨던 옥천서원의 사당을 이마을 충의제에 봉안하여 향사하고 있다. 충의제는 李義士의 후손이며 문명과 덕망이 높았던 四宜 李成根이 선대를 위해 晩年을 보내며 창건했고 많은 문도를 길렀던 곳이다.
  • 조 실(租谷)
    • 칠봉산(516m0에서 발원된 두의천이 마천에서 흐르는 계곡과 합류되는 평야지 서편에 남향한 20여호의 마을이다. 자연환경의 산수가 잘 어울려 앞산의 명기와 함께 잘 알려진 명지이고 서남으로 봉산마을과 뒷산 고개너머 안조실과 멀지않다. 宣祖때 永同에서 密陽人 朴碧龍이 入鄕해서 그 후손이 살며 肅宗때 金海人 金文達이 入鄕하여 아들 漁隱 金先生(1677年生)이 世居했고 후손들이 살고 있고 純祖때 한성에서 坡平人 尹勉常이 入鄕해 후손이 살고 있다.
  • 싯 질(楓谷)
    • 용암면 소재지 정동2.5km에 남쪽과 서편을 산으로 두르고 동향한 마을이다. 마을주위에 단풍나무가 많아서 싯질이라 했다. 마을앞에는 회나무의 老巨樹가 있다.
    • 동래정씨의 선대를 추모하는 풍곡제가 있고 군위방씨와 충주석씨가 살고 양잠업을 부업으로 하는 알찬마을이었으나 지금은 특수작물과 축산업을 하고 있다.
  • 사싯골(泗水谷)
    • 싯질마을 동남 1.2km의 세천을 끼고 동향한 5∼6호의 마을이다. 사싯골은 孔孟의 유학을 닦는 선비들의 고장이란 뜻이다. 千年老巨樹 느티(회화)나무가 버티고 서서 옛마을의 영화를 표현한다.
  • 적 산(赤山)
    • 사싯골 남쪽 700m 거리에서 세천의 상류 산골에 터잡아 남향한 마을이다. 적산의 마을이름은 중국상고시대 전설에서 神農때의 雨師인 赤松子가 산에 들어가 선인이 되었다는 고사를 따라나온 도선의 閑村을 뜻한다. 약10호의 各姓마을이다.
  • 대성리(大谷, 大成里)
    • 개정리 동남500m에 위치하여 마을 동쪽은 210m의 아시산을 사이로 고령 다산면과 경계한다. 경주김씨가 대수로 약30호의 남향한 산촌이다.
  • 웃 티(上峴)
    • 봉산마을 서편 1.5km 두의천 계곡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남쪽 1km에 수륜면 배티마을로 넘어가는 배고개(梨峴)는 옛 날부터 길손이 잦은 통로였다.
    • 肅宗때 선산에서 江城人 文南 이 入鄕해서 그 후손이 살고있고 星山李氏, 南平文氏가 半半 으로 약20호를 이루고 있다.
  • 당 안(唐案, 新反)
    • 웃티마을 서북의 계곡상류쪽 500m거리에 자리한 산촌이다. 마을서편 1.5km거리에 수륜면 개티마을로 넘어가는 개고개(介峴)의 조금아래 산위에 몇 년전까지 이어진 5∼6호의 "深隱마을)은 발촌이 되어 잡초만 무성하다. 介峴(개고개)은 介山을 표방한 것이고 그것은 中國 山東省에 있는 山介에 춘추시대 介子推가 숨어살은(隱居) 것과 비유해 介峴과 深隱村이 유래된다. 수륜면의 鵲隱洞은 鵲山과 深隱古村을 인용했던 것이다. 당안마을에는 南平文氏 등 20호 정도가 있다.
  • 새 목(鳥項)
    • 당안마을 상류쪽 약1.7km거리 계곡에 있는 마을로 약10호가 옛마을을 지키고 있는 산촌이다. 현재 마을앞 상신저수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 동 락(元東洛)
    • 동락리는 용암면의 가장동편의 두의천(신천) 하류에 있고 동락마을은 들건너 기산리와 마주보는 마을이다. 약30호의 各姓마을이며 麗末 경주인 李先生이 世居했던 곳이다.
  • 개정리(柯亭里)
    • 싯질과 동락마을 중간에서 아시산 북쪽기슭에서 용암평야를 남북으로 접해앉은 마을이다.
  • 두만동(豆滿洞)
    • 동락마을 북쪽의 표고146m의 낮은 산봉을 사이로 하여 두의천이 마을을 한바퀴 곡류하면서 동쪽의 낙동강에 유입된다. 50호의 大村인데 고령신씨, 현풍곽씨, 김해허씨, 성주이씨, 밀양박씨등이 살고 있다.
  • 가죽정(價亭)
    • 낙동강이 성주군을 따라 남류하다가 郡界를 벗어나면서 동쪽으로 물길이 돌아가는 曲江部 강촌이다. 마을남쪽 아시티는 다산으로 나가는 고갯길이 있고 그아래 새바우(鳥岩)마을도 가죽정마을 권에 따르고 있으나 이제 두어집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기씨, 조씨등 약10호의 各姓마을이다. 마을옆 낚시바위안쪽에는 月峯 李廷賢과 李壽星의 墓所가 있다.
  • 하미기
    • 칠봉산 남쪽 산마루에 용암면의 서단이며 수륜면과 대가면의 경계지점의 고산마을이다. 이마을에서 발원된 두의천은 용암면의 젖줄이 되어 중심부를 약20km 관류하여 낙동강에 유입된다.
    • 이마을은 교통이 현대화되기 전에는 성주에서 지사, 법산, 덕곡, 인곡의 각방으로 왕래되던 중요한 길목이다. 密陽朴氏가 약10호로 各姓등 20호의 마을이다.
  • 곰지골(熊谷)
    • 하미기 동남 1km 계곡에 자리한 마을이다. 熊谷寺의 절터가 있고 軍威方氏와 各姓의 약10호 마을이다. 성암초등분교장이 폐교되고 그 자리에 성산청소년수련원이 있다.
  • 대밭골(竹田, 晩城里)
    • 대밭골(竹田, 晩城里)
  • 관 산(觀山)
    • 선남면 경계의 이천에서 용암면 소재지로 가는 중간지점에 대동초등학교가 있는 丘陵마을이다. 金海金氏, 壽城羅氏 등 20호의 마을이고 肅宗때 金七吉이 世居했고 그 후손이 살고 있다.
  • 기성리(基城里)
    • 관산마을 서쪽 500m거리에 도로를 접해 남향한 金海金氏와 星山李氏 주류로 약50호의 마을이고 시설채소작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부촌이다.
  • 윗 골(渭洞)
    • 신라시대 두리실방의 지방문화 전성기때 그 중심부근과 연관된데 따른 지명이다. 칠령재의 지맥이 남에서 북으칠령재의 지맥이 남에서 북으로 내려 나지막한 구릉을 이루며 마을을 감싸고 동북방의 도로옆에는 표고 160여m의 기이한 지형 표주박과 같은 산이 있어 뜨레봉(마산)이라하고 마주보는 마을을 산세의 뜨레박을 표방하여 두리실(뜨레실)이라 한다. 이 마을은 사부골과 함께 충절의 고장이다.
    • 일어났을 때 사부골 출신 현풍인 곽태상과 위골마을의 의성인 김희현의 후손 김자운, 김세봉은 향내열현과 함께 반당을 무찔러 나라를 바로잡았고 그 공훈은 성산기공비에 새겨져있다. 이 마을에 순조때 함안에서 함안인 조화식이 입향 복거했고 의성김씨가 많이 사는 30호의 마을이다.
  • 우미기(牛項)
    • 이 마을은 두리실의 들건너 맞은편 마을이다. 두의곡천변에서 칠령재로 향하는 낮은산을 양쪽으로 하여 산골은 곧고 길게 파고 들어간 형상이 가락 같아서 가락골이라한다. 조금들어가 앉은 약30호의 사부골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와 수륜면 보월리 맏찔로 넘나드는 칠령재 산길은 현대화 이전에는 중요한 도로였다. 또한 종교시설인 지장사절, 중앙교회, 덕평교회가 있는 종교인 마을이기도 하다.
  • 덕 평(元德坪)
    • 마월과 상신리 두갈래 두의천(신천)이 합류되는 동남에 평야마을이며 과수원(사과)재배 및 최신시설을 갖춘 진일농장(닭6만수)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업데이트 날짜 : 2023-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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