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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성주 옥천서원

옥천서원 입구 옥천서원 설명표지판 옥천서원 입구 옥천서원 전경 옥천서원 전경 옥천서원 간판 옥천서원 간판 옥천서원 전경 옥천서원 전경 옥천서원 전경
  • 주소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대봉5길 33
  • 구분 도지정 기념물 제162호(2009년 7월 6일)
  • 문의문화예술과(문화유산) 930-6782

  • 상세내용
    이 서원은 조선중기 인물인 이사룡(李士龍)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서원은 숙종 18년(1692) 성주목사와 관내의 사민(士民)들에 의해 그가 살았던 곳인 월항면 인촌리 작촌에 충렬사(忠烈祠)로 처음 건립된 것에서 연유하며, 정조 20년(1796)에 사액되었다. 그 후 충렬사는 옥천충렬사(玉川忠烈祠) 또는 옥천서원(玉川書院)으로 불려지다가 고종 8년(1872)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으며, 1919년 직계후손들의 집성촌이 있는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이사룡(李士龍, 1595~1641)은 본관이 성산(星山), 자는 사중(士中)으로 조선 중기의 무인이다. 그는 인조 18년(1640)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청나라의 원병으로 징발되어 동북지방의 전투에 출전하였는데, 이듬해의 접전에서 임진왜란 당시 입은 명의 은혜를 생각하여 전투에 임하여 명군에 공포(空砲)를 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하였다. 이후 그는 의사(義士)로 불리게 되었으며, 정조 17년(1793) 성주목사에 추증되고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옥천서원은 건축적인 측면에서 사당과 가묘가 일곽 내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원의 변화된 양상을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제향 주인공인 이사룡이 조선후기 숭명배청사상의 중요한 하나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매우 주목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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